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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 (Hobby)/영화 (Movie)

소스코드 결말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영화를 본 후에 봐도 됩니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설정은 이것이다. 간혹 헷갈려 하시는 분도 있는 것같은데... 콜터대위는 이미 두 달 전에 전투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아직 뇌의 일부가 살아 있다. 영화에서 뇌사상태라고 번역했던 것같은데 반대 아닌가? 뇌만 살아있는 상태자나? 식물인간이라고 해야 맞을 듯... 나중에 굿윈중위가 그 인큐베이터 같은 것을 열었을 때 상체만 남아 있는 콜터의 모습... 끔찍했다.

  그리고 션이라는 학교 선생이 그 열차사고의 사망자 중의 하나인데, 그는 뇌사 상태로 뇌의 일부 기억을 회복(?)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의 사망 전 마지막 8분간의 기억이 존재하는 것이다. 소스코드라는 신발명 기술에 의하여 식물인간 콜트대위를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션의 사고 8분전의 기억의 세계로 들여보낼 수가 있는 것! 생각해 보면 좀 말은 안된다. 하지만 그걸 해주는 발명품이 소.스.코.드.!!

  소스 코드라는 제목이 얘기하듯이 그게 션의 마지막 8분의 기억을 재구성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모델인지 (즉 소프트웨어 속, 실제로 굿윈중위가 그와 대화할 때 그의 대화는 영상일거 같았는데 채팅화면 같은게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설마 소프트웨어인거니?) 실제 다른 이의 아직 살아 있는 뇌의 기억 부분으로의 세계인지 좀 불명확하긴 한데 아마도 후자일 것같다. 사실 영화에서 그것을 분명히 제시하지는 않고 있는 것같다. 둘 중에 무엇이건 어차피 뻥인데 영화만든 사람인들 알 수 있겠는가마는 ㅋㅋ. 전자라고 생각하면 디지털 가상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가 되고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를 생각해야 한다) 후자라고 생각하면 인간의 기억이라는 좀 더 정체 불명의 세계가 되니까 더 상상의 여지가 많아진다.

 

 

일부 살아있는 콜터대위의 뇌는 굿윈중위와 마치 영상통화를 하듯이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실제로 콜터대위는 말을 못하는 상태이기때문에 그의 대화는 채팅 화면으로 굿윈에게 보여지는 것같다. (맞져?) 콜터 대위는 결국 영화 인셉션에서의 꿈속에 머무는 것처럼 다른 이의 기억의 세계 속에 머물게 된다. 8분 동안만... 그리고 다시 거기서 빠져나와 굿윈에게 보고하고 하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죽은 이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단서를 찾는다. 여기까지만 가지고는 평행이론이라고 하기가 뭣한데, 굿윈으로부터 자신의 처지를 전해들은 콜터대위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자신의 상태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소스코드의 세계 속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을 계획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계획하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늘 8분 후에 열차가 폭발하면서 그는 션의 세계 즉 또 다른 평행우주로부터 현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크리스티나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열차는 그들을 내려 두고 가서 폭파되어 버린다. 8분이 지났으나 그는 현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누구와 싸우던 중 철로에 떨어져 열차에 치여 죽게 되고 그 후 아공간(? 亞공간, metaphysical limbo? ㅋㅋ) 상에서 한동안 헤메다가 간신히 굿윈과 다시 접촉하여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그는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달은 것같다. 굿윈에게 자기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8분 후에는 현실에서 죽여달라고... 흠... 근데 왜 보내고 바로 죽이면 안될까? 이미 다른 우주로 건너가 있는데... 8분 후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역시 좀 말은 안된다. (아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혹시 열차 폭파를 저지하지 못하면 8분 후에 다시 빠져 나와서 돌아와야 하니까 8분간 기다려줄 필요는 있겠군여... ^^)

 

 

소스코드 상의 세계는 션의 죽기 8분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거기부터 마치 진짜 세계인 것처럼 느껴지는 세계인데 그게 그냥 션의 뇌속의 기억을 사용해서 재구성한 시뮬레이션 환경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콜터가 실제로 접하는 상세함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사실은 션이 알지 못했을 사실들까지도 콜터가 발견하고 하니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그 세계는 션의 기억을 매개로 소스코드라는 기계를 통하여 8분전의 세계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또다른 평행우주에 속하게 된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긴 하다. 그래서 콜터는 그 곳이 다른 우주라고 믿게 되었을 것같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도 확신은 없었던 것같은 것이... 8분이 되기 직전 그는 크리스티나에게 마지막일지 모르는 키스를 한다. 그리고 현세에서 굿윈에 의해 그 순간 그의 생명유지 장치는 멈추어 버린다. 그리고 짓궂게도 감독은 그 순간 영상을 정지시킨다. 러셀 피터스는 열차안의 사람들 앞에서 혼자 개그를 열심히 하다 멈추어 버리고 승객들은 웃다가 멈추어 버리고 콜터는 키스를 하다가 멈추어 버린다. 우리에게 마치 감독이 묻는 것같다. 이 세계는 이제 사라질까요 아닐까요? 아니면 이대로 영원히 정지되어 버릴까요? 영혼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글쎄다 ㅋㅋ) 그러나 다행히도 몇 초 후에 영상은 진행되고 8분의 벽을 지나 (8분의 벽은 옛날에도 사실 지나봤져) 삶은 지속된다. 즉, 현세에서의 콜터는 이제 완전히 죽었으나 그의 의식은 아니 그의 영혼은 또 다른 평행우주 속에서 션의 몸을 빌어 새 삶을 지속하는 것이다. 영혼은 있는 것이다!!

 

 

결국 현세에서의 굿윈은 그의 소원대로 그를 마지막으로 다시 8분전의 평행우주로 보내주고, 현세에서의 그의 생명유지 장치를 차단하여 준다. 그리고 콜터대위는 그 평행우주 속에서 열차 폭파범을 잡고 8분후의 죽음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의 굿윈에게 범인을 알려주고 크리스티나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물론 그녀에게 그는 션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둘이서 무슨 큰 조형물이 있는 놀이터 같은 곳에 가게 되었을 때 콜터가 매우 놀라면서 '이것은 운명인가? (Is this a fate?)'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여...

  [리플 주신 분들의 의견 보니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웹에서 좀 정보를 찾아 보니까, 콜터가 8분짜리 소스코드 여행을 다녀 올 때마다 보여지는 단편적인 기억들 (flashbacks) 속에 그 조형물 - Cloud Gate 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 참고) - 을 보았던 것같습니다. 실제로는 거기에 아직 가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저는 그 부분을 놓쳤던 것같네요) 그래서 나중에 그것을 발견했을 때, 아... 여기에 이렇게 오게될 것이 이미 나의 예견된 운명이었던가... 하는 의미의 독백을 한 것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세계관이 더 혼란스러워지는군여. 이론... 예정설까지...?]

 

 

웹상에서 좀 보니까 영화의 엔딩 관련해서 두 가지 논란들이 있다. 또 다른 평행우주에서 콜터가 많은 인명을 구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션만은 구하지 못했다는 것. 그의 영혼이 션의 몸을 빌려야 했으므로 션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자신이 아닌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육신? 본질적으로는 죽었다고 봐야할까? 그래서 8분후에 키스가 끝나고 정지되었던 영상이 다시 진행될 때, 콜터의 존재는 죽어서 사라지고 션의 정신이 돌아왔다면 좀 더 건강한 엔딩이었고, 콜터는 두 세계를 모두 구한 영웅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는... 그리고 또 다른 논란은 그가 옮겨간 평행우주 상에 여전히 굿윈중위의 소스코드 본부에 두 달 전에 사망한 자신의 식물인간인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 헉... 하나의 우주에서는 자신은 죽은 사람이 되어 있고, 또 다른 평행우주에선 자신의 영혼이 두 카피 존재한다는 거 - 션과 식물인간으로써... 뭐 타임머신 스토리에도 가끔 나오는 설정과 비슷하긴 합니다만 영화 볼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ㅋㅋ 참 생각할게 많은 영화죠?

 

 

처음에 얘기를 시작할 때, 소스코드라는 것이 션의 죽기 직전 8분의 기억으로 구성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모델일 가능성을 언급만 했었는데, 어차피 리뷰가 길어졌으므로 이 경우의 수도 포함시키기로 하자. 소스코드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것은 뭔가 디지털화된 가상세계인 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시뮬레이션 모델일 경우는 콜터가 마지막으로 소스코드에 접속하고 돌아오지 않으므로써 소스코드가 시뮬레이션 하는 가상세계 속에서 그의 의식이 프로그램의 일부 형태로써 계속 존재하며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계속 좀비 프로세스로써 running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영화 매트릭스도 컴퓨터가 창조해낸 가상 지구 환경이므로 소스코드를 그런 급의 컴퓨터 가상환경이라고 가정하면 이해가 안될 것도 없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몰피우스에게 매트릭스 안의 세계가 진짜냐고 물었을 때, 몰피우스는 진짜란 무엇인가 하고 되묻는다. 너의 오감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너의 뇌가 프로세싱 해서 진짜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진짜와 어떻게 구별되냐는... 물론 이 영화의 경우는 보다 더 급진적이다. 진위를 판단할 뇌에 해당하는 외부의 나 자체가 죽어버린 후 프로그램으로써만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나는 뭐냐는 얘긴데... 일본 만화 공각기동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보그의 몸에 자신의 기억을 옮긴 전자두뇌를 탑재한 존재들이 나와서 고스트가 있네 없네 어쩌구 하면서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려고 한다.

 

 

인간의 자의식과 영혼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단지 고도로 복잡한 뇌시스템의 결과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면, 역시 고도로 복잡한 (인간의 두뇌보다도 더 복잡한) 컴퓨터 두뇌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도 자의식이나 영혼이라고 비유될만한 혹은 그보다 더 복잡한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유물론적으로 생명현상을 바라보면 궁극적으로 이런 식의 얘기가 하고싶어지게 된다. 본 영화가 이런 경우라고 보게 된다면, 콜터는 가상세계인 소스코드 안에서 생명으로써 살아간다고도 볼 수 있다. 소스코드 전원을 끄지 않는 한... 이것도 평행이론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열차 키스신에서 화면이 정지되었던 것은 소스코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이제 열차폭파가 일어나지 않은 다른 환경으로 바뀌게 되므로 우리가 컴퓨터 게임을 할 때 한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 loading... 하면서 좀 버벅거릴 수 있듯이 소스코드 컴퓨터의 메모리 context switch 과정의 과부하 현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지연상태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오마이갓... ㅋㅋ 이 영화는 정말 골때린다.

 

 

현실.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 물리의 법칙. 이런 것들 속에서 바라보면 다 말도 안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웃고 넘어갈 얘기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짚어 보고자 한다.

  영화 인셉션이 매우 참신했던 것은 사람의 꿈이라는 이 또한 신비한 영역을 아주 재미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다양한 존재 가능한 세계를 이야기 했기 때문이라면, 이 영화는 꿈이 아닌 '기억'과 '뇌의 활동' 또는 그 이상을 이야기 한다고 할까? 평행우주는 좀 와닿지 않지만 말이다.

영혼이라는 것의 존재를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듯이... 또 귀신의 존재를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듯이... 사후의 세계를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듯이... 우리의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믿지만 그럼 영혼이란 무엇이냐고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이 또한 복잡해지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영혼은 육신과 함께 존재하는 영(spirit)적인 존재로써의 나다. 영과 혼과 육 세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혼에는 세가지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기억 감정 의지...

  이러한 기독교적인 영의 존재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든가와는 별도로... 나에게 내가 아는 육적인 존재로서의 흔히 알고 있는 내가 아닌 또다른, 아니 그 연장선 상에서의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중요하고도 흥미있는 추론이다. 그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적인 과학이라는 교육의 분석 수준으로 바라보면 물질을 넘어선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은 해석 불가능 - 말도 안됨 - 으로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한번 꿈을 생각해 보자. 매일 나는 잠에 나를 맡기고 의식의 전원을 차단한다. 다시 전원이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켜질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이것이 죽음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는 별개로 생각하기로 하자. 꿈 속에서 영화 인셉션처럼 나는 엄청난 경험의 세계에 빠져든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생생해서 장자가 호접몽에서 일컬었듯이 꿈이 실제인지 생시가 실제인지 아니면 둘 다 실제인지 애매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우리가 꿈을 정말 얼마나 잘 알고 있단 말인가? 꿈과 현실과 또 다른 세계와의 관계를...? 본 영화의 관점이라면 꿈 속에서 우리는 어느 다른 평행우주에 다녀오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을까? ^^

  이제는 죽음을 생각해 보자. 죽음이 잠과 다른 것은 의식의 전원이 차단되는 것은 동일한데, 다시 전원이 육의 세계에서 켜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성있는 별개의 나라는 존재를 그대로 유지한 채, 아니 그 이상의 더 분명한 원초적인(? 나도 무슨말 하는지 모름 ㅋㅋ) 자신이 되어 새로운 세계에서 전원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내가 왜 이렇게 믿게 되었는지는 생략하기로 하자. 복잡한 얘기가 되므로... ^^ 사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죽음 이전의 의식의 세계와 완전히 유리된 별개의 세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두 세계는 당연히 연장선상에 있다. 단언적으로 선한이에겐 천국이 악한이에겐 지옥이... 라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어쨌거나 영혼에 관한 한은 혹자가 이야기 하듯이 육체라는 것이 영혼이 의지적으로(?) 세상에 표출된 모습이라고... 영혼 없이는 육체도 없는 것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얘기도 있다. 하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얘기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영의 세계를 거론하지는 않지만 타인의 기억과 의식의 공간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는 자신의 현실과는 별개의 세계라는 것. 그리고 죽음을 넘어서 이 새로운 존재의 차원으로 들어가서 살게 된다는 것... (아 물론 영화에서는 영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행 우주로 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마치 영혼이 육신을 떠나 타인에게 빙의 되듯이 (귀신의 경우처럼) 다른 평행우주의 션에게로 들어가 버리지 않았는가? 그 평행우주의 입장에서 션은 외부세계의 귀신에게 빙의된 채 사는 셈? ㅋㅋ 결국 소스코드는 평행우주간의 영혼 전송장치인 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묵시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현세에서의 나의 육신은 죽지만 다른 평행우주로 건너간 콜터대위는 거기에서 션의 육신을 빌어 살게 되니까. 그렇지 않고 소스코드가 단지 다른 이의 기억의 세계를 특정 시간 동안 내가 구경할 수 있는 장치라면 내가 죽는 순간 다른 이의 기억을 구경하는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현실에서 플러그를 빼버리면 매트릭스 속에서의 존재가 죽어버리듯이... 콜터는 이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마지막 도박을 한 것이리라. 그가 말했듯이 자신은 현세에서 어차피 이미 죽은 목숨 아닌가...

 

 

이 부분이 나에게는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우리의 삶을 유비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매우 흥미로왔다. 죽은 이후에 나의 육과 의식의 전원이 꺼져 버렸는데 어떻게 메모리 장치(뇌세포)가 작동을 해서 나의 존재를 받쳐주는 핵심인 '기억'을 유지해 주겠는가 하는 것이 사후의 영생과 관련한 나의 오랜 의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것은 역시 현대 과학 문명의 짧은 소견과 그 교육의 후유증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임을 깨닫게 되었다. 음... 좀 종교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내가 현세에서의 뇌세포라는 스스로의 기억장치를 유지하며 나를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 자체에서 이야기 하듯이 영혼이라는 녀석에게 어떻게든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꼭 육신의 고깃덩이 속에 컴퓨터 칩처럼 기억이 존재해야만 하겠는가? 영혼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판에... 앞에서 말했듯이 육이 영혼의 의지적 현현이라면, 뇌세포와 기억장치는 영혼의 기억능력의 물질적 표출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무지함을 위장하려니 어휘선택이 좀 어려워진다 ㅋㅋ)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분이 나를 기억해 주신다는 것... 놀라운 표현이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계셔서 내가 현세 이후에 그 분이 관할하는 다른 존재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면 그 분이 나의 살아생전의 기억 정보를 나 대신에 보관(?)하고 있고, 실제로 내가 잊은 것들 뿐만아니라 애초에 기억조차 하지 않았고 내 기억의 능력에서 벗어나는 것들까지도 다 알고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Jesus saves! (예수님이 백업했다는 의미도...ㅋㅋ)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분명히 자신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발견을 하게 되고 새로운 존재의 영역을 체험하게 되리라고 믿고 희망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삶과 이 모든 정신적 능력과 상상력과 (특히 죽음을 넘어서는 상상력) 노력과 관계들이 무의미하게 존재했다는 것은...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아쉽고 허무하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일회용 황사 마스크가 아니라는데 나는 베팅하고 싶다!

  이러한 생과 사의 영역의 진실이 비단 한 종교의 형식에만 국한되리라고 믿는 것도 아니다. 진실의 실체는 어느 한 두 종파의 표현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근 일련의 영화들은 - 히어애프터, 컨트롤러, 더라이트, 소스코드 - 나의 이러한 부분의 상상력을 자극해 주어서 매우 즐거웠다.

출처: jwbae1004님 [소스코드] 도대체 상상의 한계는 어디? 인셉션과 또다른 맛(네이버 리뷰)